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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에서 세계광고계 Big Thinker로, 박서원 빅앤트 대표

노구라 2010.09.14 06:52


난다 긴다 하는 국 내외 거대 광고회사들을 제치고, 생긴지 5년 밖에 안 된 직원 20 여 명의 작은 광고회사가 글로벌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출품 첫 작품으로 프랑스 칸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영국 ‘D&AD’ 공모전 등 국제 5대 메이저 광고제에서 모두 수상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그 다음해 역시 세계적 광고제인 뉴욕 ‘원쇼’와 ‘클리오’ 광고제에서 최우수상과 본상을 수상했다. 한국인 역대 최다, 최초 2연패 수상의 주인공인 박서원 빅앤트 인터내셔널 대표.

남들은 부러워하는 ‘재벌 2세’ 출신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 타이틀이 작품을 평가절하할까 밝히기 싫어한다. 아버지인 박용만 두산 회장에게 광고제에서 15개 상을 받을 때까지는 자기가 아들임을 세상에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경영승계보다 아직은 광고가 즐겁다는 박서원 대표는 자신을 광고쟁이가 아니라, 생각쟁이라고 말한다.

방황하던 20대 후반에 발견한 광고는 그에게 ‘미친 자신감’과 하루 2시간씩만 자도 끄덕 없는 ‘열정’을 주었다. 글로벌 광고 무대를 뒤흔든 그의 생각의 노하우와 프로세스, 창의력의 비결, CEO아들이 바라본 아버지 박용만 회장, 크리에이티브 컨설팅을 통해 꾸는 꿈을 가 전한다. (편집자주)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 번트 H. 슈미트(Bernd H. Schmitt)는 말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 빅 씽크를 꿈꾸라고. 크고도 대담한 생각으로 광고계의 판을 뒤집는 데 여념이 없는 박서원 빅앤트 인터내셔널 대표. IGM 비즈니스 리뷰가 신사동 30평짜리 작은 사옥에서 일하는 그를 어렵게 만났다.


홍미영 기자(이하 IGM): 빅앤트 인터내셔널은 작은 회사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전환시켜주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광고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화려한 수상경력으로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으셨는데요. 어떤 수상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박서원 빅앤트 인터내셔널 대표(이하 박서원):
제일 기억에 남는 상은 아무래도 뉴욕 원쇼(One Show)에서 2년 연속 수상한 일입니다. 세계적 무대에서 원쇼의 권위는 영화로 치면 아카데미상에 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IGM:이름이 재미있습니다. 큰 개미라는 뜻의 빅 앤트 인터내셔널은 어떤 광고 회사인가요. 왜 하필 개미입니까?

박서원:
개미의 색감과 생김새가 전하는 매력, 개미의 성실성이 좋았습니다. 이왕이면 광고계를 선도하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큰 개미라는 의미의 빅 앤트로 지었습니다. 빅 앤트 인터내셔널은 광고회사가 아니고, 광고 회사의 형태를 띤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펌(Creative Consulting Firm)입니다. 의뢰제품의 전략이 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는 일을 하지요. 서울사무실에 6명, 뉴욕에 4명, 시카고에 3명이 있고 10명 내외의 프로젝트 그룹이 존재합니다.

빅 앤트는 광고기획뿐만 아니라, 의뢰한 제품의 네이밍부터 로고, 브랜드 포지셔닝 등 디자인에 관한 모든 창작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광고제품의 전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전략을 정해줍니다.

IGM: 남들에 비해 뒤늦게 뛰어든 디자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대학교 2학년이었던 당시 광고회사를 차렸던 계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기업가인 부친의 영향력을 받았던 때문이었을까요?

박서원:
즐길만한 다음 목표를 찾았던 거죠. 1학년 때 교수님께서 과제 하나를 주시면 저는 20개, 30개, 50개를 해서 갔습니다. 며칠씩 날밤을 새도 즐거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니, 옆에서 자극 받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20개, 30개 해올 때 그 친구들도 경쟁의식에 10개, 20개 해 오더라고요. 일정 수준 분량의 일을 하니까 그 다음해엔 광고와 디자인에 대해 눈이 뜨였습니다. 그 친구들도 그랬을 거에요.

2학년이 되니 학교 수업 따라가기가 훨씬 수월했고, 좀 더 재미있는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열심도 있고 실력도 좋은 학교 동기들 5명을 모아 자취방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빅앤트에서 하는 역할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 보다,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게 방향성을 정해주는 것입니다. 잘 나가는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운전사의 역할이죠. 우리 아이디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떤 장애물을 피해야 할 지, 어떤 생각들이 좋고 창의적인지를 결정합니다.

IGM: 지금 빅앤트는 설립하자마자 세계적인 수상작들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빅앤트라는 잘 나가는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카레이서로서 창의적인 생각을 만드는 특별한 문화나 노하우가 있습니까?

박서원: 빅앤트의 문화는 ‘죽을 각오로 일해라’입니다. 밖에서 빅앤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기대합니다. 1년에 1~2명 뽑는데, 왔다가 가는 사람들만 20명 정도입니다. 반은 하루 일하고 밤새고 도망가요. 광고업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합니다.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죽어라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모자라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남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천재가 아니니까요.

일할 때 하루에 3~4시간 정도 잡니다. 요새는 바빠서 2시간 정도밖에 못 자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도 2시간씩 자면서 공부를 했었죠. 자기가 일정 수준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만큼 하고, 그 위에 더해지는 양념이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IGM: 박서원 대표의 ‘생각하는 방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박서원: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만 생각합니다. 목적이 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한국의 입시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디자인의 타겟고객, 목적 등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그럴싸한 디자인만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생각의 습관은 획기적인 why가 없는 사고방식입니다. 전 그런 생각을 싫어해요. 이 제품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이 제품을 소비자가 샀을 때 왜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광고에서 전달해야 합니다. 핵심은 How가 아니라 Why입니다.

IGM: 대표님께서 Why를 찾아낸 예를 하나 들어주시면요?

박서원: 최근에 두산타워 앞에 두산 직원들을 위한 CSR차원의 아이템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회사앞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재떨이를 만들어야겠는데, 내가 이 작품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부터 생각했습니다. 일반 재떨이가 아니라,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금연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아이템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죠.   
 
담배를 피워 본 사람들은 음료수 캔, 변기 등 물에 버린 담배 꽁초에서 니코틴액이 나오는 것을 본 경험들이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 음료수 캔에 담배를 버리고 무심결에 다시 마신 경험도요.

그래서 그 끔찍한 경험을 첫 번째 포인트로 삼아 시각적으로 보여주자고 생각했습니다.두 번째는 흔히 담배가 폐나 목에 안 좋다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담배는 폐, 목뿐만 아니라 온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포인트로 잡고 싶었어요.

사람 몸의 70%가 물인데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자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가 목에서부터 사람 몸 속의 물을 타고 들어가서 퍼져가는 것을 형상화시켰어요. 저도 이걸 만들고 나서 담배를 거의 끊게 되었어요. 사람들 보는 눈이 무서워서기도 했지만, 내 몸에 니코틴이 퍼져 가는 상상이 되더라구요. (웃음)

IGM: 좋은 생각, 아이디어를 골라내는 방법이나 툴이 있다면요?

박서원: 툴은 없어요. 훈련을 통해서 얻어진 직감을 활용하죠. 굳이 따진다면 아이디어 하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로 변형돼 사용될 수 있는 것을 뽑아내요. 즉, 개념이 크면서 그 개념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메세지의 핵심을 짚은 아이디어를 뽑아냅니다.




유교적 문화가 깔려있는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기대와 갈등을 뛰어넘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들에게 소위 ‘잘 나가는’ 아버지는 분명 뛰어넘어야 할 산 일수도, 두려운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서원 대표에게 아버지인 박용만 두산 회장은  CEO로서, 아버지로서 인생의 롤 모델이자,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경’ 그 자체다.


IGM: 그룹사의 회장인 아버지를 둔, 남과는 다른 환경이 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박서원: 아버지께서 제게 일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신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일하시는 모습, 사람 대하시는 모습을 봐 왔습니다. 직원과 클라이언트에 대한 노하우는 잘 배운 것 같아요. 제 또래보다 그런 부분은 앞서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10점 만점에 8, 9점 정도요(웃음). 주변사람들이 아버지랑 말하는 게 똑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직원들을 대할 때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요.

IGM: 재벌 2세로서 경영승계 수업을 택하는 길이 좀 더 쉬운 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굳이 창업을 선택한 이유는?

박서원: 일단 사촌형들이 경영을 배우면서 승계를 받는 상황이죠. 또, 저에겐 그 일이 즐겁지 않았고, 제가 원하는 일도 아니었어요. 나중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광고가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하루 아침에 미술을 택한 것처럼 하루 아침에 다른 일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요.

IGM: CEO 박용만 회장과 아버지 박용만 회장 두 가지 아버지 모습에 차이점이 있다면요?

박서원: 어느 방향에서도 존경스러워요. 존경스럽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어요. 주위 사람들도 아버지를 존경하고요. 아버지께서 일에 실패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집에서도 흠잡을 만한 게 없으시구요. 단점이 없는 게 단점이네요.




박서원 대표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물었더니, 말하기 싫다고 한다. 솔직하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지나간 실패에 대해 후회가 없다는 그는, 실패의 양면성으로 ‘실패’라는 결과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다고 했다.


IGM: 창업 이후 어려운 순간 혹은 실패의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서원: 창업 이후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건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실패할 일은 아예 맡지 않는다는 게 철학이에요. 자신 없는 건 하지 않으니 여태껏 실패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IGM: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은 것 같은데 대표님은 아직 그럴 기회가 없으셨나요?

박서원:
저는 실패 자체를 규정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실패는 미래의 결과에 따라 좌우되는 거니까요. 미래가 과거의 실패를 규정짓죠. 고등학교 때 놀지 않았으면 지금 내가 없었을 테니까요. 지금 보면 그때의 일도 실패가 아닌거죠.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실패는 미래의 성공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양면의 것이라는 생각이에요. 지나간 일들에 대해서 지금은 후회가 없습니다.

IGM: 그렇다면, 실패 말고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박서원:
없어요. 그게 저의 제일 큰 장점이에요. 무엇을 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제겐 있어요.저는 이 자신감을 ‘미친 자신감’이라고 말하죠. 남들이 넌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이 있냐고 해요. (웃음) 흔히들 청중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에겐 가장 강력한 공포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저는 청중에 대한 공포감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청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나요.

IGM: 왜일까요? 남들과 다른 환경으로 인한 든든함 같은 것은 아닌가요?

박서원: 부모님께서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이렇게 키워주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족에 대한 든든함 때문에 제가 말하는 ‘미친 자신감’을 가진 건 아닌 것 같아요. (웃음)

박대표의 어린 시절의 꿈과 10년 뒤 꿈 로뎅의 생각하는 인간을 박서원 대표 옆에 두면 잘 어울릴까? 박 대표는 자신을 표현하는 ‘생각쟁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에게 어렸을 적 생각과 현재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대해 물었다.

IGM: 어렸을 때 한 방황은 재미있었나요? 어린 시절의 꿈은?

박서원: 당시엔 즐거운 것을 못 찾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학교공부에서 즐거움을 못 찾아서요. 재미있는 건 노는 것이었죠. 어렸을 때는 배우나 가수, 요리사를 하고 싶었어요. 멋진 경호원이 되어서 경비업체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 때는 경비업체라는 게 없는 때여서 지금 보면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었던 셈이네요. 

IGM: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박서원:
10년 뒤에도 삶을 즐기고 싶어요. 자기가 정말 즐거운 일은 업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한번 사는데 내가 즐거운 것을 업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나중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광고가 제게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세계 곳곳에 ‘아이디어 특수부대’를 심어 의욕이 불타는 젊은 창작자들로 도시마다 소규모 지사를 내고 싶어요. 아이디어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해 회사를 키우는 거죠.

[IGM 비즈니스 리뷰 독자가 직접 물었다]

‘madsexycool’ 님의 독자질문: "평소에 사회 공헌적인 사업이나 공익적인 사업 영역에 관심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하시고 계신 프로젝트가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박서원: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돈이 모일 때마다 바로바로 치료해주는 프로젝트를 작년 겨울부터 시작했어요. Love Tree라는 음반이 팔려 수익이 모일 때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캠페인이 아니라, 내 생각을 통해 누군가 액션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크건 작건 한 사람에게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습니다.

광고를 하는 학생 중에 상업광고는 거짓말을 하고 과장을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것은 환상입니다. 저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행태를 고치고 싶어요. ‘공익광고, 사회공헌을 위한 광고만 좋은 광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상업 광고도 좋은 광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재떨이 설치도 두산 직원들의 의식 전환뿐만 아니라, 두산타워 앞에 설치된 소비자를 대상으로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업 이미지 광고도 되고요. 그래서 상업적인 동시에 공익적인 면을 가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앞으로 사회공헌적인 창작물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다른 기업들의 의뢰도 들어오긴 하지만, 일단은 두산 것부터 하나하나 시작할 계획입니다.
<저 작 권 자(c)IGM 비즈니스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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